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프링필드 M1903 (문단 편집) ==== 대전 이후 ==== [[파일:m1903a4_usmc 0.jpg|width=600]]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미 육군과 미 해병대는 저격용으로 개조된 M1903A1와 M1903A4[* 미 해병대의 경우, 유너틀(Unertl) 사의 7.8배율 [[망원 조준경]]을 단 M1903A4에 M1941이라는 제식명을 부여하였다.]를 사용했다. 이 당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당시 미국은 한국군의 증강에 맞춰 한국에 추가 군사원조를 해 주기로 했는데 예산 문제로 [[M1 개런드]]의 수량이 부족해지자 그 대신 비축물자로 있던 M1903을 주기로 했다. 이때가 '''1950년 5월'''이었고 다들 알다시피 한 달 뒤에 한국전쟁이 발발해버려서 기존의 평시군사원조 계획은 폐기되고 전시군사원조로 전환, 그 뒤로 M1 개런드를 지원받게 된다. 그러나 참전 수기에 따르면 1950년 8월 30일에 징집되어 인천 상륙작전에도 참여한 해병대 4기생들이 최초로 지급받은 화기가 [[M1918 브라우닝]]과 M1903이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전시군사원조로 전환된 이후에도 M1903이 많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지속 중이던 1950년 12월에도 M1 개런드 조달의 어려움으로 인해[*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쟁이 장기화될 것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제 아무리 미국이라도 소총을 수십 만, 수백 만 정씩 찍어내기는 부담스러웠다. 더군다나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하루 이틀만 생산할 것도 아니었고.] 다시 M1903을 대신 주는 것을 고려했으나 효율성이나 후속 지원 문제 때문에 그냥 M1 개런드를 계속 주는 걸로 결정했다. 하지만 M1 개런드의 공급 수량이 부족한 경우에는 국군에서도 M1903이 대체용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6.25 전쟁 발발 시점에서 국군은 M1903A3 소총 216정을 보유했다. 전쟁 발발 이후로는 대량공급되어 1950년 12월 말에 2,413정, 1951년 말에는 3,611정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기점으로 M1903A3의 보급은 중단되어 1952년에는 1,105정을, 정전협정 시점에서는 393정만을 보유했다. 다만 저격용인 M1903A4는 1952년에 100정이, 1953년에는 109정이 새로 도입되기도 했다.[* 박동찬, ''6.25전쟁 주요 무기I'':유엔군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661511304.png|width=100%]]}}} || || 6.25 전쟁 당시 M1903으로 무장한 한국 해병대원. || 중공군 또한 6.25 때 사용한 기록이 남아있다. 위 문단에서 보듯이 10만 7천정이 중국 국민당군에게 지원되었으니 중공군이 노획하여 사용했을 것이다. [[파일:m1903_uscg 0.jpg|width=600]] [[베트남 전쟁]] 초기에도 마땅히 쓸만한 저격소총이 없었던 탓에 저격용으로 소수가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체자로 개발된 [[M21 SWS]]과 [[M40 저격소총]]의 등장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시기부터 무기고에 비축되있던 비개조 수량들은 [[의장대#s-5.1]]나 [[청소년 학군단|청소년 학군단(JROTC)]] 전용으로 전환되었으며, 또한 [[미합중국 해안경비대|미 해안경비대]]에서는 선박 연결용 줄이 담긴 보관통(Canister)이 합쳐진 투색총(Line Thrower Gun)으로 운용하고 있을 정도로 현재에도 M1903의 명맥은 제한적이지만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